반지하 가족, 기택네
서울의 한 반지하방에 사는 기택 가족은 전원 백수다. 아버지 기택, 어머니 충숙, 딸 기정, 아들 기우는 치킨 상자 접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지하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우의 친구 민혁이 부잣집 영어 과외 자리를 제안하면서 그들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한다.
파크家로의 침투
기우는 위조한 서류를 들고 IT 재벌 박사장 집에 입성한다. 그곳은 넓고 고요한 언덕 위의 저택으로, 기우는 순식간에 그들의 딸 다혜의 영어 과외 교사가 된다. 곧이어 기정은 미술치료사로, 충숙은 가정부로, 기택은 기사로 들어가며 가족 전원이 서로 모르는 척하며 그 집에 스며든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는 과정은 계획적이고 동시에 코믹하다.
비 오는 날의 진실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간 어느 날, 기택네는 집을 자기 집처럼 누리며 파티를 연다. 하지만 이전 가정부 문광이 찾아오고, 그녀의 남편이 지하벙커에 숨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모든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기택 가족의 이중생활과 문광 부부의 비밀은 서로의 존재를 위협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계급의 냄새
박사장은 항상 냄새에 민감하다. 기택의 지하방 냄새를 언급하며 자신도 모르게 계급을 구분 짓는다. 기택은 점점 모멸감을 느끼고, 자신이 속한 계층의 한계를 인지하게 된다. 이 작은 "냄새"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치명적인 단서로 작용한다.
생일파티, 그리고 비극
다음 날은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의 생일이다. 정원에서 진행된 생일파티는 평온해 보였지만, 지하벙커에서 탈출한 문광의 남편이 등장하며 상황은 아비규환으로 바뀐다. 기우는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기정은 칼에 찔려 죽고, 기택은 박사장을 살해하고 도망친다. 파국은 조용히, 그러나 급격하게 무너진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기우는 기절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다. 기택은 행방불명이고, 박사장 집은 다시 팔려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하지만 기우는 산속에서 무전기를 통해 지하벙커에 숨어 사는 아버지의 메시지를 받는다. 그는 언젠가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겠다고 다짐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끝내 알 수 없는 채 영화는 끝난다.
반지하와 저택, 두 세계의 대비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와 박사장 가족이 사는 언덕 위 저택은 명백한 계급의 상징이다. 비가 오면 반지하는 침수되고, 저택은 정원에서 와인을 마신다. 같은 비가 내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재앙이고 누군가에게는 축복이라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은 이 공간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기생충’이라는 제목의 의미
기생충은 숙주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기택 가족은 부자 가족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지하실 남자는 말 그대로 그 집에 붙어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방관하는 사회 시스템의 잔혹함을 지적한다. 누가 기생충이고, 누가 숙주인가? 그 질문은 끝까지 남는다.
봉준호 감독이 던진 화두
『기생충』은 장르를 넘나드는 블랙코미디이자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섬세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그는 스릴러, 코미디, 가족 드라마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불편한 진실을 유쾌하지만 날카롭게 전한다. 이 영화가 전 세계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그 메시지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
기우가 말하는 ‘돈을 벌어 저택을 사겠다’는 마지막 메시지는 실현 가능한 꿈이라기보다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을 위로하는 슬픈 독백처럼 들린다. 반지하에서 출발해 저택으로 올라가려 했던 그들의 여정은 결국 같은 자리에 머문 채 끝나며, 기우의 결심도 환상에 가깝다. 『기생충』은 그렇게 계급 역전의 허상을 조명하며 우리 사회의 반복되는 구조를 냉정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